contemporary daejeon

공중처럼, 육교처럼

손미

대전에서 태어나 2009년『문학사상』으로 등단해 시를 쓰고 있다. 세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시집, 한 권의 산문집을 냈다. 걷고, 메모하고, 생각하면서 시를 쓰고 글을 쓴다. 공간에 있다가 사라지고 나타나는 것들을 관찰하면서 기록하는 시의 쓸모에 대해 고민한다.

희야 아저씨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딘가에서 까무룩 잠들었기 때문일 터였다.
희야 아저씨는 대전역 앞의 육교 위에 웅크리고 누워 잠들어 있기도 했고, 학교 운동장 철봉 밑에 누워 잠들어 있기도 했다.
- 김숨,『백치들』중에서

김숨은 소설 『백치들』의 배경으로 대전시 원도심을 선택했다. 소설 속에는 대전역, 보문산, 부사동, 홍명상가, 중앙시장, 아카데미 극장 등 대전 원도심에 있고, 있었던 익숙한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희야 아저씨는 기면증을 앓고 있다. 그는 아무데서나 잠든다. 희야 아저씨는 상처를 잊는 방법으로 아무데서나 스위치를 끄고 눕는다. 그곳이 어디든 잠이 드는 것이다. 대전역 육교에 볼록하게 몸을 말고 누운 희야 아저씨. 김숨은 탁월하게도 이 꺼져버릴 것 같은 인물에게 희야라는 그리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김숨이 소설에서 그리는 백치들은 중동산업현장에서 돌아온 아저씨들이다. 상처 입고 병들고 어수룩하고 무언가 잃어버리고 돌아온 그들은 중구 구장동 15번지에 모여 산다. 실제 대전에는 구장동이라는 행정동이 없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한 동네를 친밀하게 떠올렸다. 없지만 있는 곳,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와 비슷한 구장동. 놀이터가 없어 천변에 나가 징검다리를 건너며 놀던 곳. 그러다가 미역처럼 떠내려가는 동생의 손목을 잡아끌며 엉엉 울었던 내 가난한 동네. 백치들이 모여 살아도 하나 이상할 것 같지 않은 곳. 보문산, 부사동, 중앙시장, 대전역과 멀지 않던 그 동네.

소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대전역 앞에 육교가 있었다. 있었다 라고 쓰면서 그 시기를 가늠해 본다. 한여름엔 뜨겁고 한겨울엔 차갑게 그 자리에 박혀 있던 육교. 원래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나에겐 있었다는 것을 회상하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다.

대전역 인근 육교(1979)_대전찰칵

그 육교는 시장과 시장 사이 공중에 떠 있었다. 큰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는 역전시장과 중앙시장을 오가는 사람들로 육교의 양방향 계단은 늘 붐볐다. 시장의 양방향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도착하기 위해 혹은 출발하기 위해 육교에는 늘 사람이 오르고 내렸다. 복잡했고, 치열했으며 저녁 찬 거리가 들린 시장바구니와 기차를 타려는 사람의 핸드백과 학생들의 등에 매달린 책가방이 스쳤다. 모두 바쁘게 지나갔다. 찰나에 지나쳤다. 누구도 그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열 걸음도 안 돼 끝나버리는 세상. 거기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 그 발자국이 끌고 다닌 사연들.

그러나 그곳에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으며 육교에 올라가면 그곳에 두부, 콩나물, 나물, 수세미, 손톱깎이 등을 파는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공중에서 매일 작은 시장이 열렸다. 거기에 좌판을 편 상인들은 아마도 시장 안에 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기형도의 시「엄마 걱정」에 등장하는 열무를 팔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의 엄마였을 것이고, 첫차를 타고 나온 누군가의 아버지였다.

대전역 육교(2007)_대전찰칵

세상의 모든 다리가 그렇듯 우리는 살러 가기 위해 육교를 건넜다. 살기 위해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살기 위해 머물러야 했던 육교 위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오래전 육교를 건너다가 둥그렇게 떠 있는 달을 만난 적이 있다. 육교 위에서 바라본 달은 더 둥글고, 더 컸다. 달 그림자가 육교 위를 길게 비치고 있었다. 달이 육교 난간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달을 끌어안고 같이 떨어지고 싶었다. 그때 심정을 담아 쓴 시가「달은 떨어질 자격이 있다」이다. 첫 시집에 실린 이 시를 나는 그런 심정으로 썼다. 어쩌면 육교 위에서 만난 달은 희야 아저씨의 둥근 등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표정으로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희야 아저씨를 만나 달처럼 끌어안고 서로의 병든 곳을 재워 주었는지 모른다.

한때 나는 자주 육교 위에 오래 서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오랫동안 내려다본 적이 있다. 거기서 사람들이 여기저기 찍어놓은 발자국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발자국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다.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들. 달 같은 사람들. 스위치를 끄고 잠시 누워보는 사람들. 희야 아저씨처럼. 공중에 각인된 것처럼, 육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