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mporary daejeon
동춘당, 눈거울의 여정
Look, 본다는 것의 문화
원종훈
영화 시나리오·드라마 작가, 아키비스트, 논픽션작가. 저술 작품으로 영화『가위』시나리오, TV드라마『눈물 날 때 뛰어라』,『군포시』,『망우역사문화공원』,『사랑의열매』아카이브 북, 역사문화서『세계 헤어웨어 이야기』등이 있다.
“노안이 번쩍 뜨인다.” - 추사 김정희
“유리를 끼니 훨씬 밝아졌어라.” - 성호 이익
회덕 송촌에서, 안경을 쓰다, 편지를 쓰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대전 송촌동에 위치). 궁벽한 향리인 회덕(懷德) 송촌(宋村)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한다하여 세상은 그를 산림(山林)으로 불렀다.
1638년, 송준길은 학문에 매진하기 위해 집을 떠난 어린 아들 광식(光栻)에게 편지를 자주 썼다. 그때마다 양식, 반찬, 의복 등속을 주섬주섬 챙겨 보냈는데, 때론 ≪논어≫를 보탰다. 가을이 오면 가을 옷과 등유를 보내 아들의 온기를 살폈다. 어느 해 겨울은 자신이 늘 깔고 앉던 털 담요를 보냈다.
1660년, 송준길이 편지를 썼다. 30대가 된 아들은 여전히 학문에 열중이었다.
“노안(老眼)이 안경의 힘을 빌어 근근이 친히 개제(改題, 다시 쓰다)하였다. 비록 글씨가 정하고 좋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남의 손을 빌리는 것보다는 낫다.”
노안이 찾아온 송준길. 세월의 풍화로 송준길의 눈은 늙고 퇴화해 안경에 의지했다. 그는 50대에 접어들어서도 봄날바람처럼 온아하고 자애로운 아비이자 벼룻돌처럼 단단하고 곧은 선비였다. 그의 안경은 조선 선비의 내면을 보는 실마리다.
대모안경_국립중앙박물관 권기수 초상_국립중앙박물관 안경집_서울역사박물관 안경_서울역사박물관
동춘당의 마음, 먹빛, 그리고 안경의 희비애락
1665년 6월, 동춘당이 혼곤한 꿈에서 깨어났는데 자신이 흘린 눈물로 베개가 젖어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병든 아들 광식의 손을 잡고 백방을 뛰어다녔다. 꿈이었으되 엄연한 사실이었다.
열 달 전 아들이 죽었다.
1664년 10월 15일 아들의 발인 하루 전 날, 동춘당은 아들의 제문(祭文)을 지었다.
늙은 아비가 통곡한다고, 썼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애통하고도 애통하며 오장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겨우 썼다.
죽은 아들은 식은 재처럼 홀연히 날아갔고, 아비의 몸은 처절하고 참담하여 가늠조차 안 되었다.
먹빛이 종이 위에 번져나갈 때마다, 글이 슬피 울었다.
1665년 6월, 그는 국왕에게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적었다.
“신은 자식의 죽음 이래로 두 눈이 완전히 어두워져서 거의 흑백도 분간하지 못합니다.”
그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으로 시력을 거의 상실한 듯 보였다. 그렇게 사물의 색, 형태, 어둠과 밝음, 깊이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는 눈의 어두움이 나아진다면 선왕인 효종(孝宗) 때처럼 국왕과 학문을 논하고 싶다는 마음을 덧붙였다. 그의 몸은 나날이 쇠약해져 갔으나 후학을 위한 강론에 소홀함이 없었다.
1672년 12월 2일, 회덕 송촌은 시나브로 깊은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 날 송준길은 자신의 집인 동춘당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땅에 묻혀 시원(始原)으로 갔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동춘당 송준길. 그는 살아가는 내내 아비로서, 선비로서 주어진 생에 충실했다. 그의 안경은 어린 아들에게 편지를 쓰던 아비의 안쓰러움과 자애로움과 기다림을 말해준다. 그의 안경은 잃어가는 시력 속에서 문자를 다루는 학자의 본분, 그 자체였다. 조선 선비의 안경은 단순히 보는 것(See)이 아닌 느끼고 탐구하고 살펴보는(Look) 감각의 도구였다. 그 안경은 그들의 희비애락(喜悲哀樂)과 먹빛의 세계와 함께 소멸했다. 안경과 선비의 동행도 끝이 났다. 비로소 눈거울의 여정이 저물었다.
*필자의 집필 원칙은 옛 선인들의 심성이 담긴 글을 직접 인용하여 전개하는 것이다. 다만, 이야기 전개의 가독성을 위해 본문에 출처를 표기하지 않았다. 본문에 직·간접으로 인용한 자료와 기록을 밝힌다.
[고전번역서]
『갈암집(葛庵集)』『답이삼재(答李三宰)』
『동춘당집(同春堂集)』제5권 소차(疏箚), 제6권 소차(疏箚), 제14권 서(書), 제15권 서(書), 제16권 축문(祝文), 제17권 제문(祭文), 제18권 묘지(墓誌) 상녀광기(殤女壙記)
『동춘당집속집(同春堂 續集)』제10권 부록 5(附錄五), 제11권 부록 6(附錄六)
『서계집(西溪集)』제20권 간독(簡牘)
『아계유고(鵝溪遺稿)』제4권 노량록(露梁錄)
『약천집(藥泉集)』약천연보(藥泉年譜) 제1권
『임하필기(林下筆記)』제25권 춘명일사(春明逸史)
『송자대전(宋子大全)』제4권 시(詩) 칠언율시(七言律詩)
『퇴계선생문집(退溪先生文集)』제2권 시(詩)
[조선왕조실록]
인조 14년 병자(1636) 6월 23일(병신)
효종 3년 임진(1652) 10월 22일(경신)
